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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에 돌아본 홍범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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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에 돌아본 홍범도 장군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에 돌아본 홍범도 장군

올해는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 그 후 4개월 뒤 이어진 청산리전투가 100주년을 맞은 해다. 지난 24일에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산리대첩 전승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는 일제에 무력으로 대항해 대승을 거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 혈투였다.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고는 이 두 전투를 일상에서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특히나 두 전투를 직접적인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을 생각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봉오동전투와 홍범도 장군. 하지만 그 이름은 독립영웅이 세웠던 실제적인 공로에 비해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1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새삼스레 알 수 있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전쟁 청산리대첩 전승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전쟁 청산리대첩 전승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공연이 펼쳐지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일생을 바쳐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던 그가 조국의 광복을 2년 앞두고 75세의 나이로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10월 사망했다. 광복을 맞이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것이다. 

 

뛰어난 사격술로 끝까지 군인의 삶을 살길 희망했지만 노년엔 카자흐스탄 조선인 극장의 수위로 근무했다. 항일무장투쟁에 몸 바치는 동안 아내와 아들 둘을 모두 전쟁으로 잃고 쓸쓸한 노년을 보냈다. 그렇게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군의 유해는 코로나19가 진정되는대로 국내로 봉환될 예정이다. 

 

현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고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통화로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의견을 교환했다.

 

문재인 대통령 추천 도서 <홍범도 평전>
문재인 대통령 추천 도서 ‘홍범도 평전’.


지난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4권의 책을 추천했다. 마지막 추천목록에 있던 책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홍범도 평전’이었다.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이 책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던 장군의 일대기를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년기부터 평탄치 않고 굴곡이 많았던 그의 삶은 오로지 독립전쟁을 위해 바쳐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관적이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이끌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52세였다. 본격적인 독립전쟁에 뛰어든 건 1910년 그의 나이 42세부터지만 이미 27세부터 지속적인 의병전쟁에 몸을 담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의 일생은 출생부터 순탄치 않았다. 머슴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출산 후 7일 만에 사망, 아버지도 9세 때 돌아가셨다. 그가 15세에 나이를 속여 군인이 된 건 특별한 뜻을 품었다기보다 천대받던 삶을 피하고자 한 이유가 컸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불같은 성미 때문에 결국 군대에서 상관을 폭행하고 퇴출돼 제지공으로 취업했다. 

 

홍범도 장군은 1895년 27세 때 의병 김수협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을 시작했다. 점점 일제의 횡포가 거세져 전국적으로 동학농민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동지 한 명과 의병전에 나서 10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무기를 획득하면서 의병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40세 때까지 장군의 의병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인석 의병부대와 합류하고 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안중근 의사와도 힘을 합치는 등,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시작할 당시 수하에 400~600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지도자가 되었다.

 

병사들은 평소 밭을 갈고 전쟁 시 군인으로 활약하는 둔전병이었다. 개인적 영리나 진영논리 등이 철저히 배제된, 오로지 조국독립의 희망 하나로 뭉친 집단이었기에 최신식 무기와 훈련으로 무장된 일본군을 매번 제압할 수 있었다. 1920년 6월 7일 벌어진 봉오동전투에서도 우리 독립군은 약 10명 사상자의 희생으로 일본군 157명 사살, 300명 사상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독립전쟁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 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독립전쟁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공연이 펼쳐지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홍범도 장군의 리더십은 4개월 뒤 청산리전투에서도 빛을 발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 군대가 연합하여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10차례나 지속되었다. 국치 이래 가장 빛나는 대첩으로 기록된 청산리전투에서 그동안 홍범도 장군의 이름은 그 공에 비해 축소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홍범도 장군의 연합부대는 청산리전투 기간에 벌어진 대부분의 전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도 다름 아닌 홍범도 부대였다. 

 

객관적인 사료들로 채워진 ‘홍범도 평전’을 읽고 나니 지금이라도 그의 공적을 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얻은 가족마저 독립운동으로 모두 잃은 홍범도 장군. 그의 삶은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쳐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조국의 광복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쓸쓸한 노년을 보냈다. 그마저도 그의 유해는 현재 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 역사교과서에서 단 한 줄로 만났던 홍범도 장군. 시간이 참 오래 걸렸지만 이제 그의 공로를 제대로 평가하고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맞이한 조국의 품으로 독립영웅을 따뜻하게 품어야 할 것이다.   

 



이선영
정책기자단|이선영sharon8104@naver.com
사람이 보이는 글을 씁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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