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위 삶의 터전으로 떠나는 미로골목 여행기
[봄 여행주간 ②]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마을여행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여행하기 좋은 봄을 맞아 ‘2019 봄 여행주간’이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2019 봄 여행주간’은 4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로 올해 특별프로그램으로는 로케이션 매니저가 엄선한 전국 20개 취향저격 마을여행이 마련됐다. 이중 혼자 여행하기 좋은 여행지로 선정된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다녀왔다. 너와 함께 한 날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한 15분 정도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니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표지판이 반겼다. 길 하나 차이로 부산의 대표 여행지 중 하나인 감천문화마을 표지판도 보였다. 너무 가파른 언덕길에 30대인 필자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가던 길을 멈췄는지 모른다.
부산의 핫한 관광명소로 급부상 중인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공동묘지 위에 지은 골목동네다.
차도 오르기 힘들만큼 가파른 산동네가 알려지게 된 것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주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산동네 마을의 집과 길이 정비되면서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산상교회 주변부터 가슴 아픈 공간들을 둘러봤다. 이곳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부산역 일대를 중심으로 피난촌을 꾸려 나갔다. 아미동의 경우 16통부터 19통 일대에 정착했는데, 과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지역이다.
집을 지을 마땅한 재료가 없던 시절, 비석들은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지금도 아미동 일대의 계단이나 담장에는 피난민들이 사용했던 비석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220가구 400여 명이 살고 있는 비석문화마을에는 집안 입구에도 덩그러니 비석들이 남아있다.
실제 마을을 둘러보니 마치 미로와 같다. 골목골목 길이 많은데, 하나같이 구불구불하고 혼자서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았다. 특히 경사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축대가 필수였을 법하다. 그래서일까. 집집마다 돌 축대가 그대로 쌓여 있었는데, 중간중간 한자로 새겨진 비석들이 눈에 띄었다.
비석들의 공통점은 명치(明治)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한자 옆에는 42년 5월 16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풀이하면 메이지 42년 즉, 1909년이란 뜻으로 경술국치 한일병탄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광복으로 서둘러 돌아간 일본인들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묘지들의 흔적이었다. 1909년에 새겨진 비석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니 역사적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산 아미동 산상교회 앞에 위치한 ‘묘지 위 집’ 모습이다.
공동묘지 위에 세운 집의 모습이 아직까지 잘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가로 3m 세로 3m가 채 되지 않는 곳에 8개의 돌이 정사각형 구조로 세워져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을에서 꽤나 형편이 좋은 집의 기준이었다고 한다. 도로가 가깝고, 고지대가 아니며 면적이 넓다는 이유에서다.
비석마을의 특징은 대부분 방 하나에 두 사람이 겨우 발 뻗고 잘 정도의 규모다. 그래서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재 구청에서 공동으로 세탁과 샤워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없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는 비석마을.
화장실을 지으려 땅을 파다가 발견한 일본식 불상과 비석들이 나열돼있다.
옆 동네인 감천문화마을만큼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마을 형성 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했다. 마을 곳곳에는 비석을 가리려 급하게 시멘트를 발라놓은 흔적은 물론 주민들이 살고 있는 문 앞과 가스통에 고스란히 비석이 새워져 있기도 했다.
한자가 새겨진 비석 외에도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도 새겨져 있었다. 바다모래와 조개껍질을 가져다 집을 지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미로 골목 속에서 비석을 찾는 것이 때로는 보물찾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비석을 통해 책에서만 배웠던 피난민들이 흔적이 마주하니 눈물이 울컥하기도 했다.
비석마을 안내판에는 ‘묘지 위 집’을 비롯해 ‘안심쉼터 비석’ 등의 위치를 약도로 표시해 놓았다.
보물찾기처럼 비석을 찾는 묘미도 있지만 주민들의 주거 공간이므로 조용히 다녀야 한다.
현재 4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안내판에는 소음 유발을 자제해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미로 골목에서 길을 잃어 한참을 해매고 있으니 동네 주민이 다가와 길을 알려주며 이야기했다.
주민 이모(79) 씨는 “늙은이들만 사는 곳에 무엇이 볼게 있어 왔느냐”며 “그래도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벽에 그림도 그려주니 동네 분위기는 밝아졌다”고 귀띔했다.
비석마을의 특징은 대부분 방 하나에 두 사람이 겨우 발 뻗고 잘 정도의 규모다.
그래서인지 골목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마을을 걷다 보니 담벼락 두 곳에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꼬불꼬불 계단과 벽에 전쟁 통에 일어났던 생활상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마을 분위기 때문일까. 골목골목에서는 외국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천마산로에 접어들자 기찻집 예술체험장도 만날 수 있었다. 아미맘스(동네 젊은 엄마들이 운영하는 마을기업)가 쿠키와 팔찌, 음료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맞은편에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최민식 갤러리도 마련돼 있었다.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전망대에 올라서면 부산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야경으로 유명한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사들고 걷다보니 전망대로 발길이 닿아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부산 앞바다가 보였고, 고층빌딩으로 이뤄진 부산 시내가 한 눈에 들여다보였다. 낡은 미로 골목 속에 이런 경치가 숨겨져 있다니 부산의 숨은 명소로 꼽힌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비석 보물찾기는 물론 유유자적 미로골목을 탐방하고 싶다면 봄 여행주간에 이곳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색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