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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3.1운동 현장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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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역사 속 3.1운동 현장을 따라서

역사 속 3.1운동 현장을 따라서

1918~1919년, 일제강점기. 1918년 9월부터 ‘독감’이 유행했다. 기존과는 다른 독감으로, 당시가 무오년이라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렀다. 해외 인구 16억 중 5억 명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추산되며,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 명으로 집계된 독감.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린 스페인 독감은 한반도를 덮쳤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600만 명의 인구 중 약 50%에 해당하는 742만 명이 감염됐고, 이 중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는 ‘앓는 이를 딴 방에 거처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곁에 가지 아니하도록 주의를 할 것’이라며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이 와중에도 독립의 끈은 놓지 않았다. 1919년 2월 8일, 일제의 수도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후 3월 1일, 3.1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며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3.1독립선언문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는 비석이 놓여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 비석이 놓여있다.


올해로 3.1운동 102주년을 맞았다. 3.1운동이 계획되고, 3.1독립선언문이 발표됐던 종로와 독립운동가가 투옥됐던 서대문형무소를 거닐며, 3.1운동의 탄생 과정을 살펴봤다.

 

3.1운동은 불교계와 천도교계, 기독교계가 모두 합심했다. 종교마다 3.1운동과 관련한 회의를 수차례 진행했다. 유심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불교 잡지 ‘유심’을 발행하던 출판사가 있던 곳으로, 한용운 선생은 유심사에서 불교계의 3.1운동을 주도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주했고, 유심이라는 잡지를 발행했던 유심사 터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주했고, 유심이라는 잡지를 발행했던 유심사 터.


천도교는 중앙대교당에 모였다. 천도교는 중앙대교당을 짓는 비용까지 아끼며 3.1운동에 사용했는데,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는 천도교 계열인 보성사에서 인쇄한 3.1독립선언문을 사람들에게 배부했던 곳이다.

 

종교계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던 기독교계. 기독교계는 승동교회에 모였다. 당시 김원벽을 비롯한 청년들은 보성사에서 인쇄된 1500장의 3.1독립선언문을 가져왔고, 승동교회 신자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나눠줬다.

 

승동교회
승동교회.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3.1운동의 방향이 엇갈렸다. 원래 청년들과 함께 탑골공원에 갔던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은 탑골공원에 군중이 많아 유혈사태를 우려했고, 인근 태화관이라는 식당에서 3.1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현재 태화관은 사라진 채, 태화빌딩이라는 이름만 남았는데, 태화빌딩 앞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와 함께 휴식 공간을 3.1독립광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태화빌딩 앞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태화빌딩 앞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탑골공원에 모인 군중들은 민족대표를 기다리고 있었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정재용이 팔각정 위에서 3.1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1일 오후 2시. 3.1운동은 이렇게 시작됐고 서울에서 북쪽으로는 신의주, 남쪽으로는 제주도까지 전국을 만세 물결로 물들였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는 천안의 아우내장터, 기생이 중심이 된 황해주 해주의 시위를 낳았고, 제암리 학살 사건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가 고초를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걸린 태극기
서대문형무소에 걸린 태극기.


1908년 10월부터 독립운동가를 고문했고, 수감했던 서대문형무소는 3.1운동으로 잡혀 온 수감자를 넣고자 2층 옥사를 새로 짓기도 했다. 10, 11, 12옥사가 대표적인데,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쉽게 통제하고자 부채꼴 모양으로 한 원형 감옥 구조로 만들었다.

 

10, 11, 12 옥사
10, 11, 12 옥사.


또한, 독방도 만들었다.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으로, 일제가 독립운동가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함께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설치했다. 독방은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는데,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악행을 일삼았다.

 

1평도 안되는 공간, 독방
1평도 안되는 공간, 독방.


일제의 악행 속에서도 독립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3.1운동이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서 다시 일어났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이 펼쳐진 것. 이처럼 독립을 향한 의지는 계속됐고, 비로소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유관순 열사가 주도해 만세 운동을 했던 여옥사
유관순 열사가 주도해 만세운동을 했던 여옥사.


어느덧 3.1운동이 일어난 지 102년이 지났다. 100년이 넘은 시간 동안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고, 3.1운동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비석과 표지판이 남았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전염병, 일제의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만세를 외쳤던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역사 속 현장에서 다시 감사를 표한다.



조수연
정책기자단|조수연gd8525gd@naver.com
자유로운사고, 냉철한 분석, 공정한보도! 대진대 학보사인 대진대신문사 편집장 조수연입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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