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3 (월)

  • 맑음속초15.6℃
  • 맑음10.0℃
  • 맑음철원10.1℃
  • 맑음동두천10.4℃
  • 맑음파주9.4℃
  • 맑음대관령5.0℃
  • 맑음춘천10.5℃
  • 맑음백령도14.1℃
  • 맑음북강릉15.1℃
  • 맑음강릉14.3℃
  • 맑음동해14.7℃
  • 맑음서울12.4℃
  • 맑음인천13.7℃
  • 맑음원주11.8℃
  • 맑음울릉도14.8℃
  • 맑음수원13.2℃
  • 맑음영월10.3℃
  • 맑음충주11.0℃
  • 맑음서산10.4℃
  • 맑음울진14.0℃
  • 맑음청주13.3℃
  • 맑음대전12.1℃
  • 맑음추풍령12.0℃
  • 박무안동11.2℃
  • 맑음상주12.2℃
  • 맑음포항14.8℃
  • 맑음군산10.7℃
  • 맑음대구14.3℃
  • 맑음전주12.6℃
  • 맑음울산15.4℃
  • 맑음창원16.3℃
  • 맑음광주12.8℃
  • 맑음부산15.7℃
  • 맑음통영14.7℃
  • 맑음목포13.7℃
  • 맑음여수14.2℃
  • 맑음흑산도15.3℃
  • 맑음완도15.3℃
  • 맑음고창10.5℃
  • 맑음순천11.0℃
  • 맑음홍성(예)11.4℃
  • 맑음10.6℃
  • 맑음제주14.1℃
  • 맑음고산15.7℃
  • 맑음성산16.2℃
  • 맑음서귀포16.9℃
  • 맑음진주12.0℃
  • 맑음강화12.6℃
  • 맑음양평11.2℃
  • 맑음이천11.5℃
  • 맑음인제8.6℃
  • 맑음홍천8.7℃
  • 맑음태백9.1℃
  • 맑음정선군8.1℃
  • 맑음제천10.0℃
  • 맑음보은8.9℃
  • 맑음천안10.2℃
  • 맑음보령12.3℃
  • 맑음부여10.5℃
  • 맑음금산9.3℃
  • 맑음11.1℃
  • 맑음부안11.8℃
  • 맑음임실9.5℃
  • 맑음정읍10.8℃
  • 맑음남원11.1℃
  • 맑음장수7.9℃
  • 맑음고창군10.1℃
  • 맑음영광군10.1℃
  • 맑음김해시14.4℃
  • 맑음순창군10.7℃
  • 맑음북창원15.2℃
  • 맑음양산시13.7℃
  • 맑음보성군14.3℃
  • 맑음강진군12.1℃
  • 맑음장흥10.0℃
  • 맑음해남11.8℃
  • 맑음고흥12.0℃
  • 맑음의령군11.4℃
  • 맑음함양군9.7℃
  • 맑음광양시13.2℃
  • 맑음진도군15.2℃
  • 맑음봉화8.4℃
  • 맑음영주11.3℃
  • 맑음문경12.6℃
  • 맑음청송군7.8℃
  • 맑음영덕13.0℃
  • 맑음의성10.1℃
  • 맑음구미13.0℃
  • 맑음영천10.2℃
  • 맑음경주시13.1℃
  • 맑음거창10.4℃
  • 맑음합천10.8℃
  • 맑음밀양13.3℃
  • 맑음산청10.3℃
  • 맑음거제14.3℃
  • 맑음남해15.6℃
  • 맑음13.4℃
기상청 제공
부산의 유관순들은 왜 3.1운동에 나섰을까?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

부산의 유관순들은 왜 3.1운동에 나섰을까?

부산의 유관순들은 왜 3.1운동에 나섰을까?

[대한민국 곳곳서 찾은 101년전 만세 함성 ③] 부산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 일신여학교


‘꽃 같은 젊은 여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하늘 높이 외치니… 님들의 독립만세는 부산·경남 지역의 선구가 되니 국사에 어찌 남녀의 구별이 있으랴.’

 

부산 일신여학교 기념비에 적힌 비문의 일부이다. 101년전 3월 1일, 서울 시내를 휩쓴 독립운동 열기는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에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장거리 이동수단이 변변찮았던 101년 전, 부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3월 11일 일신여학교 만세운동은 부산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부산·경남 만세운동의 효시가 됐다.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옛 일신여학교 는 부산최초 근대 여성교육시설이다.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옛 일신여학교는 부산최초 근대 여성교육시설이다.


101년 전이면 여성의 외부활동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부산에서 가장 먼저 태극기를 들고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뭘까.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옛 일신여학교 기념관을 찾아가봤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좌천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니 숨이 벅차오를 듯 가파른 오르막길에 아담한 붉은색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화학당이 한국 최초 교육기관이라면 일신여학교는 부산 최초 근대 여성교육시설이다.

 

부산시 지정문화재 제55호인 일신여학교는 1905년 198㎡면적에 2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현재 부산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1895년 호주 여성 선교사들이 세운 일신여학교는 ‘나라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부인들과 어머니들이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성경과 영어, 조선어 등을 포함한 근대 교육을 받으며 개화의식과 남녀평등, 민주주의 등을 익혔다’는 설립 취지가 동래학원 100년사에 적혀 있었다.

 

부산시 지정문화재 제55호인 일신여학교는 1905년 198㎡면적에 2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현재 부산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부산시 지정문화재 제55호인 일신여학교 1층의 모습.


1층은 3.11운동에 참여한 김반수 지사가 다닐 무렵의 학교 역사와 교실이 꾸며져 있었다. 긴 초록 책상에 나무로 된 의자까지 당시의 소품들이 배치돼 있었다.

 

증축된 건물이라 2층은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이곳에는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작고 아담한 탓에 그 흔한 운동장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에 위치한 탓에 2층에만 올라가도 아래 동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1919년 3월 그날의 발자취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봤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부산에서는 3월 10일 아침, 조선인 거주지인 영주동, 초량, 부산진 등지에서 밤 사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격문이 잇따라 발견돼 경찰이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일본 경찰은 이튿날인 3월 11일 거사가 예정됐던 부산상업학교의 시험을 돌연 중지시켰고, 학생들을 강제 귀가시켜 시위 발생을 원천 차단하려고 했다. 이렇게 불발로 끝나나 싶었던 만세운동은 일신여학교에서 다시 불이 붙었다.

 

만세시위 때 쓸 태극기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께서 마련해둔 혼숫감으로 마련된 옥양목 저고리의 모습. <사진=동래여고 제공>
김반수 지사가 만세시위에 사용한 옥양목 저고리의 모습.(사진=동래여고 제공)


‘3월 1일에 독립만세를 전국에서 부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동지 일신여학교 대여섯 명이 모여 저의 어머님께서 출가시킬 때 쓰려고 장만해 둔 혼숫감 옥양목을 어머님 몰래 끄집어 내 기숙사로 가져와 태극기 100여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3월 11일 밤 11시경 거리로 나가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지쳐 쓰러지면 또 용기를 내어 불렀답니다.’

 

당시 16세였던 김반수 지사가 1993년에 그때를 회고하며 쓴 손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렇게 부산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하던 학생들 모습에 거리의 주민들도 함께 호응했다. 범일동 방면으로 방향을 바꿔 행진을 진행하며, 2시간 넘게 시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대거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시위는 끝내 멈췄다.

 

3·11운동에 참여한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모습
3.11운동에 참여한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모습.


만세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들과 교사들은 다음날인 3월 12일 체포 뒤에도 당당했다고 한다. 대부분 16세였던 어린 여학생들은 뺨을 맞고 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치욕을 겪었다.

 

‘결국은 일본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지만, 여자로서 부끄럽다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우리나라를 되찾아야지 하는 일념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항의를 했답니다. 결과는 옥살이였지만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너무 대견스럽고 가슴 뿌듯합니다.’

 

김반수 지사의 손 편지를 읽고 있자니 가슴 한편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한 목숨 내놓겠다는 여학생들의 결의가 느껴졌다. 이후 3월 13일 동래 봉기, 3월 19일 범어사 학생의거, 3월 29일 구포시장 의거가 잇따랐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부산·경남 지역 학생과 시민들의 민족의식을 자극시키기 충분했다. 동쪽으로는 동래·구포·밀양·울산, 서쪽으로는 김해·창원·함안·함양·합천 등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매년 3월이 되면 일신여학교에서 동구청까지 1.4km 거리행진으로 100년 전 전국에 울려퍼진 3?1운동 만세함성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부산동구청 제공>
매년 3월이 되면 일신여학교에서 동구청까지 1.4km 거리행진으로 100년 전 전국에 울려퍼진 3.1운동 만세함성을 재현하고 있다.(사진=부산동구청 제공)


부산 일신여학교 기념관에는 1919년 3월 학교 출신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당시 사진과 활동 모습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그들의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기념사진에서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반수 지사를 비롯해 1995년 독립장을 받은 박차정, 심순의, 김응수, 이명시 등이 일신여학교 여성독립운동가들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